자기 파괴의 충동을 지닌 돌연변이 기계
이선영(미술평론가)
전시장 한켠에서 복사기가 돌아간다. 복사기의 안쪽 부속품들이 쏟아져 나온 상태인데도 작동되고 있으며, 혼자서 불빛을 내며 무엇인가를 끝없이 스캐닝하고 있다. 내장처럼 쏟아져 나온 부속품은 빨강, 파랑, 노랑색이 칠해져 있다. 부수어진 기계는 케이블 타이로 다시 연결되어 있는데, 기계 표면 위로 뻗은 수많은 케이블 타이들은 마치 짐승 가죽위의 털처럼 빽빽이 붙어있다. 그것은 산산조각 나기 일보 직전의 몸체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남은 여력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려는 듯하다. 작품 [현대인들의 삼원색에 관한 착각]은 복사기 안에 세 가지 색상의 잉크가 들어있다는데서 착안한 것이다. 그 삼원색의 조합에 의해 수많은 색이 재현된다. 그것은 극소수로 한정된 코드가 유일한 기준이 되고, 그것들의 조합 및 무한 재생산에 의해 세계의 다양성이 제한되는 상황을 표현한다.
부수어진 기계의 몸체를 잇는 케이블 타이는 손쉽게 조여 주는 역할을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것은 딱 한번만 사용될 수 있다. 정승이 다른 작업에서도 많이 활용하곤 했던 케이블 타이는 단순히 재미난 형태를 연출하기 위한 방편이기 보다는, 편리함, 일회성, 조이기, 일방성 등의 성질을 통해 현대 문명이 가지는 본질적 면모를 압축하는 소재이다. 대상과 대상이 이음매도 없이 연결되는 ‘컨버전스convergence’ 시대에 작가는 조각난 대상을 누더기 깁듯이 잇는다. 디지털 부문에서 활용되는 융합 기술을 덩치 큰 아날로그 기기에 적용함으로서, 가시적 효과를 극대화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끌어 모아 한 평면에 놓고 압축시키는 것은 기술의 바로미터가 되어 새로운 가치(이윤)를 창출하곤 한다. 압축 또는 종합은 종종 과도해져서 부조리할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데, 정승의 누더기 기계들이 상징하는 바가 그것이다.
이 기계들은 각각이 가진 기능과 독특함으로 진가를 발하기 보다는, 맹목적인 융합을 통해 모든 존재가 엇비슷해지는 상황을 만든다. 모든 것을 조금씩 갖추기 위해 많은 물질과 에너지가 집약되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서로 비슷해진 존재들이 동일한 평면에서 무한경쟁을 한다. 이러한 경향은 다양성의 공존과 평화가 아니라, 권태로움과 전쟁을 낳는다. 작품 [흐르는 물은 비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는 샤워기와 변기를 결합시킨 것이다. 하얀 타일이 깔려 있는 변기 아래가 깨져있고, 그 조각들 사이로 쏟아진 물이 고여 있다가 모터에 의해 순환된다. 변기와 샤워기 사이를 순환하는 탁한 물은 씻기와 배설물 처리를 결합시킨다. 그것은 어쩌면 배변과 목욕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중의 씻어내기라는 행위를 통해 위생에 대한 현대의 강박관념을 표현한 것이며, 한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발상이 극단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껴진 시간과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은 또 다른 소비와 생산의 광란일 뿐이다. 이 기계는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순환 주기가 서로 분리할 수 없을 만큼 더욱 짧아지고 있음을 예시한다. 두 대의 선풍기가 얼굴을 마주대고 작동되는 작품은 융합의 부조리성을 극대화시킨다. 그것은 작품 제목처럼 ‘진화를 위한 몸부림’이다. 머리가 붙어있고 몸이 서로 꼬여있는 두 대의 선풍기는 회전 모드로 맞추어져 있어 거슬리는 소음을 내면서 계속 뒤틀린다. 서로 붙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두 개체가 한데 얽혀서 몸부림치는 모습은 어떤 상상속의 괴물 못지않게 섬뜩하다. 복사기, 선풍기, 양변기 등이 활용된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작가가 수년 째 실험하고 있는 돌연변이 기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모두 최초의 대상이 가졌던 기능이 변형된다. 생존을 위한 진화는 생물 뿐 아니라, 기계에도 적용된다. 자연에서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수많은 실험이 이루어지는데, 거기에서 과도적인 존재들인 돌연변이가 태어난다.
그 중 극소수만이 경쟁력 있는 새로운 종으로 분화한다. 인간의 예술적, 과학적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것 역시 자르기와 다시 잇기 라는 기본적인 방식을 가진다. 작가는 개체 뿐 아니라 환경을 대상으로 하여, 공간에 가벽을 만들고 그것을 부러뜨려 다시 잇는다. 통상적으로 융합이나 집중은 생산력의 향상을 위한 것이다. 한 대의 자동차나 컴퓨터가 생산되기 위해 수많은 부품들이 집중되어야 한다. 그것은 동시에 노동력과 잉여가치(부)의 집중이기도 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다양한 동기와 행위를 생산력이라는 한 가지 목표로 수렴 시킨다. 그리고 모든 이들을 동일한 반열에 올려놓고 같은 것을 욕구하도록 한다. 집중과 융합을 통해 대량 생산하고 이를 대량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욕구의 획일화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구의 획일화는 풍요 속의 빈곤을 생산할 뿐이다.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무분별한 융합에는 자기 파괴적인 충동이 내재해 있다.
분열된 기계를 깁는 행위는 연결 부위의 실밥을 드러내고 틈을 벌리는 행위에 가깝다. 균열을 노출하면서도 그것들은 여전히 작동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정상적인 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승이 사용하는 기계나 기구들은 대개 기능에 충실한 산업 생산물들이다. 선풍기, 변기, 샤워기, 복사기 등의 대상은 아무런 장식도 군더더기도 없이 그것의 목적을 위한 형태들을 가시화한다. 원래의 재료들은 ‘형식은 기능을 따르는’ 기능주의적 사물이며, 기능에 대한 기호를 가진다. 하나의 기능으로의 환원은 그자체가 끊임없는 제거와 융합의 결과물이다. 현실 속에서 기능들끼리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은 더 나은 기능을 위한 것이며, 자본의 조절과 관료적 통제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승은 케이블 타이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분리된 기호들을 결합시키는데, 이는 산업 현장이나 시장에서 이윤을 위해 늘 상 이루어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다시 표현한 것이다.
거기에서 기능의 배가를 위한 공장과 시장의 실험들의 부조리한 면모가 극대화 된다. 작가가 고안한 새로운 기계 혹은 기구들은 기능이나 생산의 향상이 아니라, 자기모순과 자기파괴를 향해 치닫고 있는 듯하다. 그는 기능주의의 언어를 조금씩 비틀어 기능을 초과하는 몫을 드러낸다. 본래의 기능이 변형되었지만 멈추지 않고 쉭쉭거리며 계속 작동하는 정승의 기계들은 욕망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것은 기계와 인간을 동시에 연상시키며, 양자는 ‘욕망하는 기계’로 수렴된다. 들뢰즈는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한 책에서, 욕망하는 기계들이 작동하면서 끊임없이 고장이 나며 고장을 일으키면서만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때 욕망하는 기계들의 고장은 그 작동 자체의 부분을 이룬다. 욕망은 기계요 기계들의 종합이요, 기계적 배열이다.
욕망은 생산의 질서에 속하며, 모든 생산은 욕망하는 것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기계는 연속체의 힘을 구현하며, 어떤 부품이 다른 부품과 연결된다. 통일성을 향하는 것은 근대적 이성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성은 근대적 계몽의 전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만프레드 프랭크는 [현대의 조건]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 이성은 통일성을 지향하는 힘이다’라고 말한 이래, 이성적 판단의 근본 성질은 사고의 필연성, 보편성, 합법칙성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성은 개인적인 열정에 대해 일반의지의 합리성을 대립시키면서, 과학적 논증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 사회적 형식들을 백지화했다. 이성은 보편주의의 근거가 되었으며, 현대성은 이성에 의해 통제되는 세계의 긍정적 이미지에 의해 완성되어야 했다. 근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것들 사이의 차이를 포괄하려는 동일성의 사유가 확립된다.
그것이 생산과 소비, 소통(유통) 체계와 맞물리면서 표준화 되었다. 도처에서 합목적성과 효율성이 구가된다. 그러나 진보는 인간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도 부품으로 활용되는 익명의 구조가 유지되고 확대 재생산되는데 필요한 것은 아닌가. 정승의 작품에 나타나는 부조리한 기계들은 인간을 비추는 또 다른 거울이다. 거기에서 합리성은 부족하거나 초과된다. 그것은 근대의 이성이 밟아온 궤적과 같다. 이성은 투명하거나 공평무사한 것이 아니라, 욕망 및 권력과 얽혀 있다. 정승의 작품에서 기계들의 기능은 최초의 투명한 의미와 기능을 잃고 변형된다. 그러나 그 변형에는 뚜렷한 목적이 없다. 그것은 근대예술처럼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가진다. 그것은 도구화된 이성이 인간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생산으로 치닫게 해온 자본주의 사회의 숨겨진 비합리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비합리성에서 해방의 계기를 보는가, 아니면 억압의 계기를 보는가는 관객의 관점에 달려있다.
Photo copy machine cut into pieces and reassembled with tie wraps. The inner parts are spilled out like internal organs and are painted red, blue, and yellow. The scanning neon light moves back and forth.
사무용 복사기 한 대를 분해하여 내부의 부품들은 모두 꺼내서 삼원색인 빨강, 노랑, 파랑의 색으로 칠하고 바닥에 늘어놓는다. 케이스 부분은 작은 조각들로 자른 후 가장자리에 드릴로 구멍을 내서 케이블타이로 본래의 모양으로 재조립하였다. 스캐너 부분에서 소형 형광등이 달린 바는 불이 켜진 채로 좌우로 무의미하게 왕복하는 동작을 계속하도록 설치하였다. 세상에 그 무엇이든 다 재현해 낼 수 있으리라는 현대 문명의 오만함을 주제로 ‘복사기’라 불리는 오브제를 통해서 관객들과 생각을 나누고자 시도하였다.
The two electric fans with conjoined heads and entwined bodies generate a harsh sound and are continuously being twisted.
선풍기 2대를 마주보는 방향으로 부분 개조 및 합체하고 회전 모드인채로 작동 시킨다.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뒤틀린 채로 틱틱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치 금방이라도 고장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주는 움직임을 이어간다.
A Struggle For Evolution . 2 electric fans . 150x50x50cm . 2008
진화를 향한 몸부림 . 선풍기 2대 . 150x50x50cm . 2008
Stay With Me . wood . 100 x 100 x 60 cm . 2017
나와 함께 있어요 . 나무 . 100 x 100 x 60 cm . 2017
Minimalist Landscape- 로봇강아지들의 성격화에 관한 동물학적 의의
작품의 외부는 두 가지 색이 있는 아크릴재질의 박스 구조로 되어있으며, 1960년대 미술계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미니멀리스트 작품을 연상시킬 만한 구조로 제작하였다. 단지 다른 점은 투명한 색상으로 인해 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점이다. 모더니티가 정점을 찍을 무렵 미니멀리스트 작품들 또한 간결한 선과 색으로 객관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하학적 형상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작가의 개인적인 감성을 배제했던 모습은 언뜻 개개인의 개성은 무시된 채로 시스템의 완성에만 전념했던 모던한 도시사회의 구조를 그대로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그 어떤 프로파간다 혹은 캠페인으로도 획일화 시킬 수 없는 현대도시사회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브제들의 조합을 이상주의적 구조물 안에 역설적으로 결합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Minimal Landscape-Characterizing Robotic Puppies in Zoology . acryl box, robotic puppies, neon light . 240x60x20cm . 2015
미니멀한 풍경- 로봇강아지들의 성격화에 관한 동물학적 의의 . 로봇강아지, 네온, 아크릴케이스 . 240x60x20cm . 2015
A car cut into small pieces and rebuilt by zip ties.
자동차 1대를 작은 조각으로 모두 자르고 다시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 본래의 모습으로 조립하였다. 형상은 그대로이나 물성이 완전히 변한 오브제로 재탄생한 것이다.
Car(essaieII). car, cable tie . 420x200x160cm . 2008
자동차(essai II) . 자동차, 케이블타이 . 420x200x160cm . 2008
A car cut into small pieces and rebuilt by zip ties.
자동차 1대를 작은 조각으로 모두 자르고 다시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 본래의 모습으로 조립하였다. 형상은 그대로이나 물성이 완전히 변한 오브제로 재탄생한 것이다.
Car(essaie I) . car . 900x800x200cm . 2006
자동차(essai I) . 자동차 . 900x800x200cm . 2006
Approximately 50 shelving units distorted and extended in the air like a drawing in three-dimension.
Stands . iron stands . variable size . 2006
진열대 . 철재진열대 . 가변사이즈 . 2006
플라스틱 의자의 앉는 부분을 들어내어 기능은 사라지고 디자인된 형상만 남게하였다.
Plastic Chair(essaie I) . plastic chair . 30x40x40cm . 2004
플라스틱 의자(essaie I) . 플라스틱 의자 . 30x40x40cm . 2006